sub_thinnavi


공지 및 이벤트

상단메뉴

상단배너


CBS 메뉴


CBS 방송 공식 어플리케이션 출시
성서학당 유튜브
성서학당 페이스북
신천지OUT
CBS TV 자막광고
창사 60주년 CBS 후원 특별모금
 
  > TV > CBS성서학당 > 시청자 퀴즈 참여
시청자 퀴즈 참여
퀴즈 참여하기
NO 성명 소속교회 정답 등록일
47048 조*원 ******************** 2022-12-12
제21장은 요한복음의 결어(Epilogue) 부분으로서, 갈릴리의 디베랴 바다를 무대로 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 번째로(14절) 만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우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간 것은 일반적으로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사명을 버리고 옛 생활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제자들보다 갈릴리에 먼저 가서 그들을 기다리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따른 것이다(마 26:32 ; 28:7). 갈릴리는 대다수 제자들의 고향이자 처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부름받았던 곳이면서, 약 2년에 걸쳐 주님을 따라 동고 동락하며 사역하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고자 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주님과 함께했던 초기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시며, ‘나를 따르라’는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던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려 하심이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본장의 첫 단락인 1-14절의 장면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되었던 때, 곧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다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진 결과 많은 고기를 잡았던 때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



예루살렘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며 또 갈릴리에서 다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를 기다리고는 있었으나, 제자들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는 베드로의 제안이나 그 제안에 동조하는 다른 제자들의 반응은, 아직 미래의 문제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장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제자들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제자들이 옛 생활로 돌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주님의 약속 앞에서 아직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해하는 제자들의 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은 그들이 다시 ‘물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가 고기를 잡으러 나섰던 그 날, 제자들은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날이 새어 갈 때에 육지에서 그 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한 사람’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했더니 제자들은 그물을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다. 실로 제자들로서는 3년 전 처음으로 부름을 받던 그 때를 기억하게 만드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로소 육지에서 계신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이 신 줄 알아본 요한의 말을 들은 베드로는 그 반가움을 억제치 못해 웃옷을 급히 두른 채 먼저 헤엄쳐서 주께로 가고 다른 제자들도 고기가 가득 담긴 그물을 끌고 배를 육지에 대었다.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했을 때, 주님은 그들을 위해 친히 숯불을 지펴 떡과 생선을 굽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더 가져오도록 명하여 숯불에 굽도록 한 뒤 친히 먹과 생선을 나누어 주신다. 밤새 고기잡이에 지쳐있고 새벽의 싸늘한 공기에 식어 있던 그들의 몸은 주님이 마련하신 조반을 먹으며 따스하게 회복되었다. 이렇게 해서 갈릴리에서의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재회(再會)가 이루어진 것이다(14절).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이 날 아침의 기억은 제자들로서는 처음 주님의 부름을 받았던 추억과 더불어 평생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된 셈이다.



이어 15-23절의 두번째 단락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내용으로서,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심으로써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바 있던 베드로와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을 보도하고 있다. ​



그리고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순교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적 예언과, 또한 본서의 저자인 요한의 장래에 관한 베드로와 주님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고 그 대화 내용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인 24,25절의 두 구절은 일종의 추신(追伸)으로서, 본서의 기록 당시 사도 요한의 동역자들이 본서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해 증언한 것을 추가하고 있으며, 또한 본서가 예수님의 행적 중 극히 일부만을 기록한 것임을 밝히는 것으로 본서 전체를 마무리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본서의 구성을 잘 살펴보면 본서는 20장에서 종결되어도 큰 무리가 없게 여겨진다. 하나님의 아들의 구속 사역의 핵심인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기사가 이미 20장까지에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게다가 20장 말미에는 본서의 기록 목적까지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본서의 전체 내용에 포함되지 않아도 무방할 것 같은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사건을 따로 한 장(章)을 할애하여 중요하게 보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본서의 저자인 요한에 관한 의문을 해명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대화하실 때 요한에 관한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대답하셨다. 아마도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다른 제자들로 하여금 요한은 예수님의 재림시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주님께서 요한의 생존시에 재렴하실 것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결코 작은 의혹이 아니었다. 따라서 저자 요한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베드로와의 대화를 기록하여 소개함으로써 주님 재림의 시기와 자신의 생존 시기와 연관된 초대 교회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한 것이다(23절).



둘째로, 베드로의 사도(Apost1e)로서의 지위가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대죄(大罪)를 범한 자였다. 사복음서 모두가 베드로의 예수 부인 사건을 보도할 정도로 베드로의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께 대한 신앙을 부인한 자가, 비록 회개하였다고는 하더라도 어떻게 초대 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가 되어(갈 2:9) 하나님의 양무리를 먹이는 중요한 직책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교회사(敎會史)를 보면 노바투스(Novatus)파는 데시우스(Decius, 249-251년) 황제의 박해 이후 신앙을 배척한 중죄인은 교회에서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또 도나투스(Donatus)파는 로마 황제에 의한 최후의 박해인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284-305) 황제의 박해 이후 변절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앙을 변절한 지도자에게서 받은 세례마저 무효라고 주장하여 교회의 큰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는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부활의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주님께서 친히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주셨음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는 주님의 부활 이후 베드로 개인의 행적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없기에 공관복음서만으로는 베드로의 지위에 대한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의 주님과 베드로에게 있었던 사건과 대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보도함으로써, 사도로서의 베드로의 사명과 지위가 온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에 대한 이같은 기사는 단지 베드로 개인의 지위 회복 차원을 넘어 주님의 한없는 용서의 은총을 너무나 아름답게 제시해 주고 있다. 동시에 주님의 사랑의 힘이 어떻게 연약한 한 신앙인을 좌절의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회복시키며, 그 사랑에 기초해 위대한 사명을 수행하게 하는지를 감격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후 베드로는 주님의 양무리를 먹이는 사명을 감당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거듭 부탁하신 주님의 음성을 베드로는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아시아의 장로들을 향해 베드로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어떤 자세로 먹여야 하는지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1-4).



그리스도께 받은 은총 때문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목양의 사명을 수행하며, 양 무리에게 주장하지 않고 다만 본을 보이며, 더러운 이를 추구하지 않고 목자장이 주실 상급만을 바라보는 ‘작은 목자’, 이는 바로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기초해 목양의 사명을 수행하는 베드로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 하나님의 양 떼들은 얼마나 이런 목양자를 바라고 있을 것인가? 또한 목자장 되신 하늘의 우리 주님은 이런 자세로 자신의 양 떼를 먹일 자를 얼마나 애타게 찾고 계실까?
47047 황*애 대구참사랑교회 ****** 2022-12-12
항상 감사합니다.
47046 정*훈 명성교회 ****** 2022-12-12
47045 정*식 거창교회 ****** 2022-12-12
47044 박*정 동수원교회 ****** 2022-12-12
 
 
 
 

CBS 광고섹션


CBS 배너

CBS 관련 사이트

  • CBS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