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그동안 짧지만 깊이 있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제 편지를 마감하고자 골로새 교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소개하고, 형제들의 문안을 전하고, 문안 부탁을 하고, 회람서신에 대한 당부를 하고, 아킵보에 대한 권면을 하고, 문안과 축도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의 주변에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고, 바울은 그들을 통해 전도 활동을 했습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은 27명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들어 문안을 하고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기질이 강인합니다. 또 목적의식이 강하다 보니 선배인 바나바와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독단적인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서신들을 보면 바울은 사교성이 풍부하고 융통성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독한 독수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길만을 외로이 걸어가는 고립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마지막 인사를 통해서 바울이 더불어 일하는 사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골로새서를 마감하면서 바울 주변의 동역자들은 누구였는지, 당시 교회 사정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소개하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의 옥중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두기고를 통해 구두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바울의 모든 사정을 전할 것이니 그에게서 들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두기고는 어떤 인물일까요? 본문에서는 두기고에 대하여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의하면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이고, 바울의 제3차 여행에 동반한 조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2절에 의하면 두기고는 세월이 흘렀어도 바울을 떠나지 아니하고 여전히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두기고를 특별히 골로새 교회로 보냈던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갇혀 있는 상태인데 위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걱정보다 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갇혀 있지만 교인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사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매였지만 복음은 매이지 아니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빌립보서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울로 인해 로마 왕궁에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울이 얼마 안 있으면 풀려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바울은 두기고와 함께 오네시모를 보내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오네시모는 원래 골로새 사람이었고, 빌레몬의 노예였으며 그가 로마로 도망갔다가 거기서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고 두기고와 함께 빌레몬서,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전달하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소개하면서 과거의 안 좋은 면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좋은 면만 말하면서 그를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넓은 마음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안 좋은 과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테이프를 돌리듯 틈만 나면 안 좋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 안 좋은 일들은 잊어버리고 좋은 일만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에 대한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이라는 표현은 두기고를 천거하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노예근성에 매여 있던 오네시모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고, 얼마나 크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도 두기고와 함께 바울의 사정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존경하고, 궁금해하는 바울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오네시모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아마 오네시모는 뜨거운 마음으로 전했을 것이고 듣는 사람들은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들이 전하는 문안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아리스다고가 바울과 함께 갇혔다는 말은 그가 죄수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 상태에 있을 때 바울을 돕는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 에베소 소요 사태 때 바울 대신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곤혹을 치른 일이 있었습니다(행 19:29). 또한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는 구제금을 가지고 가는 7인의 이방인 교회의 대표 중 한 사람이었고(행 20:4), 바울과 로마에까지 동행할 정도로 신실하고 복음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조카)로서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할 때 동행했으나 도중에 고향으로 되돌아 가버렸고, 이로 인해 제2차 전도여행 때 그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결국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마가는 베드로의 조수가 되어 많은 활동을 하였고, 베드로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마가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실패자 베드로 아래서 실패자 마가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패으이 경험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닙니다.
바울은 나중에 마가를 인정하고 그를 골로새 교회에 파송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에 마가가 실수한 일이 있어서 골로새 교회가 배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울은 미리 지시를 한 바 있었고, 다시 골로새서를 쓰면서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마가는 한 때 실수했었어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우리가 행여나 실수했다 하더라도 마가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로 유스도라 하는 예수가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유스도는 어떤 인물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할 때 복음 전도를 비방하고 핍박한 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할례파, 율법주의자들이 교회마다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의 경우는 할례파 유대인이었지만 복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전적으로 수고하고 봉사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할례파 유대인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이들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바울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환난을 당할 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패해본 사람이 실패자의 심정을 알고, 위로를 받아본 사람만이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위로를 받고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7장 5-6절을 보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안치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도가 옴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실 때 사람을 통해서도 위로하십니다. 강한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받고 또한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12-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바울은 네 번째 문안하는 사람으로 에바브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의 제자로서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를 세운 개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많은 말로 그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고, 너희에게서 왔다고 했고, 그가 항상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고, 그것도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한다고 했고, 그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증언한다고 했습니다.
에바브라는 개척한 세 교회를 돌보느라 애를 섰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이단 문제가 생기자 자기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로마에까지 머나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바울을 찾아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강구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골로새서가 기록된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다섯 번째로 소개되는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 중 가장 충성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사인 누가는 바울의 제자가 된 이후 끝까지 바울을 따라 동고동락하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고 의사였기에 육체적으로 연약한 바울을 돌보았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소개되는 데마는 이 때만하여도 바울과 함께 하며 충성하였으나 바울이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는 바울을 떠나 세상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셋째로, 바울의 문안 부탁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바울은 동역자들의 문안을 전하고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 2장 1절에 언급된 바 있습니다. 이단 사설이 골로새 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도 권면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문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눔바는 이곳 외에 언급된 내용이 없어서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가 여자 성도이고, 그 여자의 집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건물을 가진 교회가 아니고 가정 교회였습니다. 한 가정에서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정 교회의 시초는 마가 다락방이고, 눔바의 집 외에도 아굴라 부리스길라 부부의 집, 골로새의 빌레몬의 집도 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가정 교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공식적인 교회인 삼자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교회로서 건물을 가진 교회이지만 신앙의 자유를 위해 핍박을 받고 있는 지하 교회는 가정 교회입니다.
넷째로, 회람 서신에 대한 당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게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골로새서는 회람서신이었습니다. 회람서신이란 주변 교회들로 하여금 돌려가며 읽도록 쓰여진 편지를 말합니다. 바울은 먼저 골로새 교회에서 읽고 그 후에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게 하라고 당부했고, 반대로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오는 서신을 골로새 교회에서도 읽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는 편지들을 돌려가면서 읽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에베소, 빌립보 등 각 교회에 보낸 편지를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듯이 당시 성도들도 각 교회에 보내진 편지들을 돌려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교훈을 얻었던 것입니다.
다섯째로, 아킵보에 대한 권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아캅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된 바울의 옥중서신인데 2절을 보면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캅보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의 지도자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 내용을 볼 때 아킵보는 어떤 심적인 변화가 있어서 직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나 시련이 닥치면 직분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충성스럽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주변의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동역을 한 것은 단순히 그가 교제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로운 건축자’(고전 3:10)로서의 전략이었습니다.
바울은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레 26:8)라는 구약성경 레위기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파송하셨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동역의 필요성을 알고 마치 사령관처럼 일했던 지도자 중의 지도자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안과 축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대개의 경우 서신을 써서 보낼 때 그는 말하고 다른 사람이 대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안과 축도만 친필로 써서 자신의 편지인 것을 입증했습니다.
로마서 16장 22절을 보면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고 했습니다. 로마서의 경우는 더디오라는 대필자의 이름이 기록되었지만 골로새서의 경우는 대필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골로새서는 그리 길지 않은 편지이지만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만큼 바울이 기도하며 많은 생각 중에 문득문득 영적인 교훈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편지를 완성하기까지 대필자는 항상 바울 곁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 옆에 이런 무명의 사역자, 드라마의 조연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바울의 편지를 읽고 묵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나 주연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조연이 없이는 주연도 없습니다. 드라마를 생각해 보십시오. 개성 있는 조연이 있을 때 드라마는 빛이 납니다. 어떤 때는 조연이 더 멋지고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주연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조연이 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고, 사람의 눈에 띠지 않는 일이라도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골로새 교회의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기억하고 어떤 시련이 다가오도라도 담대하게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축도로 편지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늘 충만하기를 축원하면서 골로새서 강해를 마치겠습니다.
51675
정*애
흥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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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51674
최*은
분당ㅈ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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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성서학당의 특~ 수혜자입니다!
예전다니던
교회의 분열로 너무나 힘들었을때
성서학당을 통해 다시 일어날수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성서학당입니다
0어느덧60대가 되었지만
하늘나라갈때까지
성서학당 과 함께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