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임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 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느니라』(출 20:5,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만들어 섬기지 말 것을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곤 했다. 이처럼 타락한 아담의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늘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늘 최종권위는 자신들인지라,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하고자하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를 택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처럼 출애굽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엄위하신 명령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게 된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점점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극도의 타락과 혼란이 야기되었다.
재판관기 마지막에 기록된 나실인 삼손은 재판관의 일을 망각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자살로 막을 내리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또 그 세대도 모두 그들 조상에게 합쳐졌고, 그들 후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으나 그들은 주를 알지 못하며,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판 2:10).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자기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고 있었다. 성경이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판 17:6)라고 기록 했듯이, 사람들에게 최종권위가 없을 때 어떻게 방자하게 행하며 멋대로 사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때 당시 사회의 혼란을 틈타 오늘날의 카톨릭과 같은 혼합종교(계17:5)를 태동시키는 씨앗이 싹트는 과정에 종교 지도자를 “아버지”(father)라 부르는 종교가 탄생하게 된다.
신부(God father)라고 부르는 사람이나 불리는 사람들은 이때에 세워놓은 종교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미리 알고 계셨고, 이후에도 이러한 종교가 다시 탄생할 것을 아시고,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 것을 당부하셨던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낳아주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종교체계에서 불리는 “아버지”, 즉 신부(God father)를 언급하신 것이다.
『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마 23:9).
재판관기 시절 에프라임 산지에 사는 미카라는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자신의 어머니의 돈을 훔쳤는데, 그 어머니가 그 돈을 훔쳐갔을 그 누군가를 향해 너무나도 무서운 저주를 하는 것을 듣게 된다.(당시 구약 시대에는 저주와 맹세에 관한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 저주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깜짝 놀란 그는 그 돈을 다시 어머니에게 모두 다 되돌려 준다. 이에 감격(?)한 어머니는 그 돈의 일부(은 이백 세켈)로 새겨 만든 형상과 주물로 부어 만든 형상을 만들어 아들에게 준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그의 신당과 관련된 물품비용으로 쓰인다. 실로 놀라운 어머니의 사랑이다. 물론 이것은 어머니로서 좋은 뜻으로 아들에게 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상숭배에 대한 무지마저 미화될 수는 없다.
그 아들 미카는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서 그에게는 자신이 설치한 신당도 있었다. 그는 그곳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그의 한 아들을 성결(?)하게 하여 제사장을 삼았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형상들과 보조기구들이 더해 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형상을 만들어 집에 차려진 신당에 놓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 중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워 위안을 삼으며 살게 된다. 이것이 성령이 아니면 다른 영으로라도 채워져야 하는 인간의 습성인 것이다.
세 번째 계명: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주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아니하리라』(출 20:7).
세 번째 계명은 기록된 그대로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이 헛되이 사용되는 것을 무척이나 불쾌하게 여기신다. 그런데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욕설을 하는데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쉴 새 없이 사용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헛되이 사용되는 것 또한 미카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형상을 만들어 놓고 흡족해 하던 미카는 우연히(?) 거처할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한 레위인을 집으로 맞아들인 후 그에게 말하기를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에게 해마다 은 열 세켈과 옷 한 벌과 양식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레위인 청년의 입장으로서는 레위인이라는 것만으로 그를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고 재안하고, 거기에다 해마다 은 열 세켈과 옷 한 벌과 양식을 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레위인 청년은 기쁨으로 흔쾌히 승낙을 한다. 이처럼 영적으로 눈이 멀고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이 종교성만 강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