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학당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져 가는 것 같습니다.
일상들이 모두 그렇게 그리스도의 형기를 드러내길 소망합니다.
48491
김*자
구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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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감사합니다
48490
유*화
구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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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감사합니다
48489
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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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스3:1-7
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
오늘 본문을 이 한주 동안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 생명의 교회 공동체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고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의 대화
1-1. 본문의 시대 상황은 무엇인가?
2-1. '각자의 성읍'은 각 지파의 땅에 있는 성읍을 말하는가? 마리아와 요셉의 조상은 유다 지파인데 왜 나사렛에 정착했을까? 나사렛은 어느 지파의 땅인가? '일곱째 달'에 왜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이는가?
3-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이 만든 '하나님의 제단'은 놋 제단인가?
4-3. 왜 '무리'는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 했는가? '그 터'는 무엇을 말하는가?
5-4. '기록된 규례'는 어디에 기록된 것을 말하는가?
6-5.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7-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는 포로에서 돌아온 그해를 말하는가? 왜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미처 놓지 못했는가?
8-7.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브루타와의 대화
1-1. 본문의 시대 상황은 무엇인가?
-에스라 1-6장은 1차 포로 귀환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특히 3장은 그들이 귀환하여 가장 먼저 성전터에 번제단을 만들고 7월부터 번제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을 중건하기 위해 준비하고 기초를 세우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스룹바벨 주도의 제 1 차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하여 다루는 제 1 부 1-6장은 제 1, 2장과 제 3-6장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전반부 제 1, 2장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제 일차 포로 귀환과 귀환자 명단을 보도한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후반부 제 3-6장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하여 보도한다. ... 먼저 제 3장의 두 문단에서는 초막절 준수와 성전 건축의 준비 및 성전 지대 축조에 대하여 보도한다. B.C. 537년 제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들의 본성으로 돌아가 거하였다가 종교력으로 7월이 이르자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이는 7월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종교력을 보면 7월에는 1일에 지키는 나팔절, 10일에 지키는 대속죄일, 15일부터 한 주간 동안 지키는 초막절이 있었다. 이 중 대속죄일은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아직 성전이 재건되지 않았는 바 대제사장이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은 일단 옛 성전의 제단이 있던 곳에 단을 세우고 7월 1일부터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7월 15일부터는 초막절을 준수하였다(1-6절).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7절).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는 제 1 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B. C. 536년 2월에 개시되었다(8, 9절). 그리고 마침내 성전 지대가 놓였으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념식을 거행하였다(10-13절).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 지대가 놓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념식을 거행한 것은 그것이 선민의 정체성이 다시 회복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역사적인 순간에 이전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전 지대가 놓인 것으로 인하여 대성 통곡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으나 범죄하여 성전마저 파괴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채 수치스럽게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다시 성전 지대가 놓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데 대하여 감격하였기 때문인 동시에, 스룹바벨 성전이 그 규모 면에서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보잘것없고 초라한 데 대하여 슬픔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학2:3).]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42-143)
[본서 전반부 1-6장은 B.C. 537년 이루어진 바벨론 포로 제 1 차 귀환에서부터 B. C. 516년에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그 가운데 앞선 1, 2장은 고레스의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 허가 칙령에 따라 이루어진 제 1차 포로 귀환 및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 예물 헌납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제 3-6장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내용인데, 그 초두인 3:1-7은 여호와의 전 재건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이 재단을 축조하고 초막절을 준수한 사실을 보도한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46)
2-1. '각자의 성읍'은 각 지파의 땅에 있는 성읍을 말하는가? 마리아와 요셉의 조상은 유다 지파인데 왜 나사렛에 정착했을까? 나사렛은 어느 지파의 땅인가? '일곱째 달'에 왜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이는가?
-'각자의 성읍'은 각 지파의 땅에 있는 성읍을 말한다. 마리아와 요셉의 조상은 유다 지파인데 왜 나사렛에 정착했는지는 아직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일곱째 달'에 왜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 것은 7월 1일의 나팔절과 10일의 대속죄일, 17일부터 시작되는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원문으로 볼 때 이러한 내용은 한글 개역 성경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다는 표현이 아니라 초막절 준수 시점이 ‘칠월’임을 밝히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즉 히브리어 원문은 ‘칠월’에 이르라 어떤 중요한 일이 발생하였음을 미리 암시한 후 이어서 그 시점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본성에 정착하여 생업의 기반을 닦고 있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 한편 본문에서 ‘칠월’에 ...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일곱번째 달인 ‘티스리윌’에 해당하며, 태양력으로는 9윌이나 10월에 해당하고, 히브리인의 전통적 민간력으로는 제 1월에 해당한다. 이 달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절기가 포함된 달이다.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 1일은 나팔절이고, 그 달 10일은 속죄일이고, 15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초막에서 지내는 초막절이었다(레 23장). 또한 과거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낙헌제를 드린 때도 칠월이었다(대하5:3). 이처럼 이스라엘 종교력 7월은 율법의 규정으로나 역사에 있어서나 매우 중요한 달이었다. 더욱이 본문의 7월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라는 사명을 띠고 바벨론 포로에서 이제 막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이 귀환 뒤에 처음 맞이하는 7월이었으므로 그들에겐 매우 뜻깊은 달이었으며, 민간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으므로 새해 첫 시간부터 예루살렘에 모여 자신들의 신앙을 다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 본서 저자가 칠월이 되었다는 사실을 본장 서두에 앞세운 것은 이제 막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성전 재건에 앞서 초막절 준수를 통해 영적으로 자신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즉 건물로서의 성전 재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했던 것이다. ... 즉 본서 기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단순히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같은 때에 동시에 모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모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제사하려는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46-147)
3-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이 만든 '하나님의 제단'은 놋 제단인가?
-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는 대제사장이다. "그는 립나에서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살해당한 제사장 스라야의 손자이고(왕하25:18) 여호사닥의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 대에 바벨론으로 끌려왔고(대상6:14-15) 그 이후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자랐다(2:2 주해 참고).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성전 건축의 주역을 담당했던 유다 지파의 지도자이다. "스룹바벨은 유다 왕의 직계 혈통으로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가 된 여호야긴 왕의 장자 스알디엘의 아들이다(3:2; 학1:1, 12). 아마도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이를 감안하여 그를 이스라엘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웠을 것이다(2:2 주해 참고).
[여기서 제단 축조의 중심 인물로 소개되는 대제사장 예수아의 아버지 요사닥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던 인물이다(대상6:14, 15). 그로 인해 예수아는 비록 바벨론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자신들이 왜 그곳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지와 더불어 장차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자신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사14:2; 렘30:3)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배웠을 것이다(사27:13). ...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는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과거의 불순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번제가 시작됨을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 본문은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수행한 일이 무엇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단순히 이를 ‘단’으로 표기하지 않고 ‘이스라엘 하나님’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이에 해당하는 ‘엘로헤 이스라엘’에 대하여 한글 개역 성경은 어떤 곳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고(출32:27) 어떤 곳에서는 본문처럼 ‘이스라엘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여 번역에 있어 일관성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에 해당하는 ‘엘로헤’가 명사 연계형이므로 ‘엘로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한편 ‘엘로헤 이스라엘’이란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모두 215회가 사용되었는데 그중 본서에서만 무려 11회나 사용되었다. 본서 기자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 것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들의 숱한 범죄와 불순종으로 세속적 왕국으로서의 이스라엘은 멸망시키셨지만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용서하시고 바벨론으로부터 약속의 땅으로 다시 회복시키셨다. 때문에 본서 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호하며 지키심으로 구속사를 계속 전개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 한편 예루살렘 성전 터에 모인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단을 쌓은 것이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해 폐허로 변한 예루살렘 성전 터에 모인 이들은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 단을 쌓으면서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 한글 개역 성경의 문맥을 따라 읽으면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단을 만들었고 (2절 상반절) 그곳에 번제를 드리려고 하다가 (2절 하반절) 무리가 열국 백성을 무서워하므로 다시 단을 터 위에 세우고 (3절 상반절) 그 위에 번제를 드린 것처럼 보인다 (3절 하반절). 이러한 내용은 너무나 혼란스러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문으로 보면 그 의미는 명확하다. 2절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단을 만든 일을 보도한 것이다. 그리고 3절은 무리들이 주변 이방 족속들로 인하여 두려워하면서도 제단을 원래 자리에 세우고 조석으로 여호와께 상번제를 드렸다는 내용이다. 즉 본문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번제를 드리려 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드리려 할새’에 해당하는 ‘레하알로트’는 ‘~하기 위하여’라는 뜻의 불분리 전치사 ‘레’와 ‘드리다’라는 뜻의 동사 ‘알라’의 사역형 부정사 연계형인 ‘올로트’가 결합된 형태로 ‘드리기 위하여(NASB, to offer)’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번제를 드리려 한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제단이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한 용도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의미하지만 과거 바벨론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한편 동일한 자리에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까지 했다(겔8:16). 그러나 이제 성전 뜰에 새로이 놓인 번제단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번제를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본서 저자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란 표현을 굳이 사용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즉 이 번제단은 율법의 엄정한 규정에 따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만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것이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48-150)
4-3. 왜 '무리'는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 했는가? '그 터'는 무엇을 말하는가?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 했던 것은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의 숫자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체계를 갖추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터'는 성전의 제단이 놓여 있었던 터로 생각된다.
[접속사 ‘키’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본문에서는 ‘~할지라도’ 혹은 ‘비록 ~라 해도’라는 뜻의 양보절을 이끄는 접속사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다르게 본문의 주어는 ‘무리’가 아니고 ‘두려움’이다. ... 그러므로 ‘하아라초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이스라엘의 주변에 거주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호론이나 암몬 사람들처럼 이스라엘의 인접 국가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문의 뉘앙스를 잘 살려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비록 그 땅 백성들로부터 나온 두려움이 그들 위에 있다고 할지라도’가 된다. 본서 기자는 두려움을 의인화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위에 두려움이 임하였다고 표현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시 인접 국가들에 대해 갖은 두려움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아마 이는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에 비하여 이들의 수효가 월등히 많았으며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큰 배타심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의 땅에 돌아온 지 얼마 시간도 흐르지 않아 정착을 위한 기반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이 군사적 공격을 해온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멸절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이방 세력에 대하여 큰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단을 쌓았을 뿐 아니라 상번제를 빠뜨리지 않았던 것은 여호와를 향한 그들의 신앙이 깊었음을 반영한다.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 목적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회복하며 명실상부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상번제를 드리는 일을 결코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본문은 하나님의 단이 세워진 장소가 ‘그 터’ 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터’ 라는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은 원래 제단이 있었던 장소에 제단을 다시 세웠다는 의미로만 해석될 수 있다. 물론 ‘그 터에’에 해당하는 ‘알 메코노타이우’가 일차적으로 이러한 장소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알 메코노타이우’는 ‘그것의 기초들 위에(KJV, upon his bases)’로 직역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알 메코노타이우’ 는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기 이전에 있었던 제단의 기초들을 다시 활용하였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번제는 앞서 2절의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새’ 라는 표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포로 귀환 이스라엘 공동체가 조석으로 번제를 드린 것은 모세의 율법이 매일 번제단에 제물을 드릴 것을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 29:38, 39은 매일 일년된 어린 양 두 마리를 아침과 저녁에 각각 드릴 것을 명하고 있다. 또한 민28:3 이하에서는 일년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둘씩 아침과 해질 때에 각각 상번제로 드릴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두 구절을 종합하면 매일 아침과 해질 때에 일년되고 흠이 없는 어린 숫양을 각각 한 마리씩 드리는 것이 율법의 규정임을 알 수 있다. 당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변 나라들의 질시와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방 국가들의 위협에 직면해 그들은 군사력을 키우거나 전략 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뢰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방편으로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생각을 따르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된 율법을 따랐다. 한편 본문에서 조석으로 제사를 드린 사실이 상징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당신과 함께하길 원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당신의 뜻대로 일들을 계획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당신의 인도하심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반성하도록 하기 위해 조석으로 번제를 드릴 것을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조석으로 드리는 제사는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제물만을 드리는 제사가 아닌 이스라엘 자손들의 삶 그 자체를 드리는 제사였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50-152)
5-4. '기록된 규례'는 어디에 기록된 것을 말하는가?
-초막절에 대한 '기록된 규례'는 레23:42, 43, 민29:12-38에 기록되어 있다.
[앞선 3절에서 본서 저자는 포로 귀환 이후 제단이 축조되고 상번제가 회복되었음을 밝혔다. 이제 본절에서는 초막절이 회복된 사실을 밝힌다. 그런데 한글 개역 성경은 본절에서 ‘지켜’와 ‘드리고’란 두 개의 동사를 제시하고 있으나 원문으로 볼 때 본절의 동사는 ‘와이야아수’ 하나뿐이다. 이 단어의 원형 ‘아사’는 ‘행하다’, ‘만들다’라는 기본 뜻 외에도 ‘(윤리적인)의무를 이행하다’ 라는 의미도 갖는다. 그리고 세번째 의미로 사용될 경우 특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내용과 관련되어 ‘제물을 드리다’(출10:25), ‘절기를 지키다’(출12:48) 혹은 ‘전쟁을 치르다’(창14:2) 등으로 번역된다. 한글 개역 성경은 두 개의 동사로 번역했지만 원문에서 ‘아사’의 변형 ‘와이야아수’ 단 하나의 동사만이 사용된 것은 첫째, ‘아사’가 ‘(초막절을)지키다’와 ‘(번제를)드리다’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기 때문이다. 둘째, 초막절을 지키는 행위 안에 번제를 드리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월절 및 칠칠절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의 3 대 절기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는 다른 절기 때와 마찬가지로 번제가 필수적으로 행하여졌다.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초막절을 지켰다. 그리고 번제를(드렸다)’ 이지만 한글 개역 성경이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드렸다’ 라고 번역한 이유도 번제를 드린 행위가 초막절 행사의 연속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40년 간 연단시키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신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포로 귀환민들도 과거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바벨론에서 연단시키셨을 뿐 아니라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로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다. 초막절 기간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한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켰다. 7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나뭇가지로 지은 장막에 들어가 지내야 했고(레23:42, 43)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여 축제를 벌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소 고난의 장막을 체험한 뒤에 기쁨의 축제를 행함으로써 애굽과 광야에서 구원받아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된 일이 얼마나 크고도 놀라운 은혜인지를 실제로 체험하였던 것이다. 초막절은 장막에서 지낸다고 하여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들이는 기간이라고 하여 수장절이라고 하였다. 한편 초막절의 제물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번째 특징은 초막절의 제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일년된 어린 숫양을 각각 드렸는데 숫양은 두 마리, 일년된 어린 숫양은 열 마리로 그 수가 고정되어 있었지만, 수송아지는 첫날에는 13 마리로 시작해서 매일 한 마리씩 줄어 7일째 되는 날에는 7마리의 수송아지를 드렸다는 점이다(민29:12-38). 절기 제물을 7일 동안 드린 점이나 7일째 수송아지가 일곱 마리인 점은 완전수 7을 통해 온전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포로 귀환 공동체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각 날짜에 따라 짐승의 수를 정확히 드렸음을 강조하기 위해 ‘정수대로(뻬미쓰파르)’, 즉 ‘수에 따라’ 번제를 드렸다고 강조하였다. 초막절 제물의 두번째 특징은 짐승 외에 곡식으로는 제물을 삼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에는 원래 우상에게 곡물을 드리는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우상에게 바쳤던 곡식의 추수 제사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당신께 드리는 성결한 제사와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드리는 가증스러운 제사를 엄격하게 구별하기 위하여 그 제물에서부터 차별성을 두었던 것이다. 포로 귀환민들은 이러한 율법 정신을 잘 이해하고 율법의 규정을 정확하게 준수하였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52-154)
6-5.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은 레1:3에 나오는대로 자원제물을 말한다. 세 종류의 제사는 의무적인 제사이지만 이 예물을 자원제물을 말한다.
[본절의 서두에 나오는 이 단어는 ‘초막절을 지킨 후에는’이란 의미이다. 즉 본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뒤에 초막절을 첫 절기로서 성대하게 지키고 나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모세의 율법에 따라 모든 제사들을 성실하게 지켜나갔음을 밝히고 있다. 본절에는 특별히 세 가지 제사가 제시된다. 첫째, 항상 드리는 번제이다. 이는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를 가리킨다. 여기서 ‘번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올라’가 ‘완전히 태우다’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듯이 이는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번제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제시였다(출29:38, 39). 특히 하나님에 대한 불성실과 불순종으로 인해 오랜 세월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 공동체로서는 다시는 과거의 쓰라린 징계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만나며 그분께 대한 충성과 헌신을 확인해야 했을 것이다(출29:42, 43). 둘째, ‘초하루에 드리는 번제’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 표현 대신 ‘그 달의 초하룻날’이란 뜻의 ‘월삭’이란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민10:10; 시81:3). ‘초하루’에 해당하는 원어는 ‘호데쉬’로 ‘새 달’ 혹은 ‘매달’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초하루’에 드리는 번제는 매달 첫 날에 하나님께 드리는 정기적인 제사였다. 셋째, 각 절기에 따라 드리는 제사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3대 절기라고 할 수 있는 니산윌(3, 4윌)의 유월절(출12:3-20; 레23:5-8; 신16:1-8), 시완윌 (5, 6윌)의 칠칠절(출23:16; 레23:16; 민28:26), 그리고 티스리월 (9, 10월)의 초막절(레23:34; 민29:12-38) 뿐만 아니라 7월 1일의 나팔절이나 7월 10일의 대속죄일(출30:10) 등에는 각 절기의 절차에 따라 수많은 제사가 드려지고 수많은 희생물들이 바쳐졌다. ... 본문은 ‘여호와께 자원제로 드리는 모든 제물을’로 이해할 수 있다. 절기에 따른 제물이나 월삭이나 상번제로 드리는 제물은 모세의 율법이 정한 것이므로 의무적인 사항이었지만, 자원 제물은 제물을 드리기 원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선택 사항이었다. ‘드리는 예물’에 해당하는 ‘네다바’는 ‘자원제(NIV, freewill offerings)’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승으로 드리는 경우에는 새를 제외하고 양의 암컷이나 수컷이 모두 허용되었다(레22:23) 그리고 제물의 부위 중에 신장이나 장, 간 주위의 지방 등은 태웠으며 가슴이나 오른쪽 다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간주하여 제사장이 먹었다(레7:16). 특히 성막 건축이나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서 ‘네다바’는 건축에 필요한 물질을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출35:21, 29; 36:3). 또한 이는 서원한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이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물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되었다(레7:16). 이렇게 자원하여 드리는 제물은 온전치 못한 것을 절대 금하였으며(레22:23)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신23:23).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는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 의해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이를 위해 자신들의 가진 것들을 자원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렸다(8:28).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속한 개인이(고전3:16)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자원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되 반드시 온전한 예물을 드려야 한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54-155)
7-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는 포로에서 돌아온 그해를 말하는가? 왜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미처 놓지 못했는가?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는 포로에서 돌아온 그해 7월을 말한다. 1차 포로 귀환은 B.C. 597년에 이루어졌고 각각 자기 성읍으로 갔다가 다음 해 7월에 모인 것이다.
[먼저 제 3장의 두 문단에서는 초막절 준수와 성전 건축의 준비 및 성전 지대 축조에 대하여 보도한다. B.C. 537년 제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들의 본성으로 돌아가 거하였다가 종교력으로 7월이 이르자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이는 7월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43)
[본절은 칠월 초하루 즉 칠월의 월삭부터 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였음을 밝힌다. 앞선 4, 5절의 내용으로 보아 이 날 이후 율법의 규정대로 제사가 계속 드려졌고 칠월 십오일에 이르러 초막 절기를 지켰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7윌 10일에 드리는 대속죄일은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성실했거나 특정한 절기만을 선호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른 절기들은 번제단만 있으면 제물을 드림으로 지킬 수 있었지만 (3절) 대속죄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을 대면함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성전이 재건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 절기만은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 ‘여호와의 전 지대’란 표현에서 우리말로 ‘지대(址臺)’는 ‘담, 집채 등의 건축을 위하여 지면에 터전을 잡고 돌로 쌓은 부분’이라는 뜻이지만 이에 해당하는 ‘헤칼’은 단지 ‘건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놓지’에 해당하는 ‘윳싸드’의 원형 ‘야싸드'가 ‘어떤 건축물이나 조형물의 기초를 놓다’라는 의미이므로 대개의 영역본들은 이를 ‘성전의 기초 (NIV. NASB . RSV, the foundation of the temple)’란 의미로 번역하였다. 특히 본문에서처럼 ‘야싸드’가 강의 수동형 (Pual)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건물의 기초가 놓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본서 기자는 지금까지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각자의 고향으로 흩어졌다가 민족의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재단을 축조하고 각종 제사 봉헌 및 초막절을 준수한 사실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내용에 이어 본문에서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이지 못한 상황을 언급하는 것은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가 착수될 시점에 이르렀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본절에 이어지는 7절에는 성전 재건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짐을 보도하고, 8-13절에는 성전 재건 공사의 시작과 성전 지대 축조식에 대하여 보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6장에 이르러 성전 재건이 완료된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귀환하여 활발하게 종교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 가장 큰 목적이었던 지대조차 놓지 못하고 있었음을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전 건축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불 수 있다. 즉 성전 재건의 역사가 이루어질 시점이 되었음을 독자들에게 각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56-157)
8-7.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은 어떤 것이었는가?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은 스1:3-4, 6:3-12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말한다.
[앞선 2-6절은 포로 귀환민들이 과거 성전의 제단이 있었던 곳에 제단을 축조하여 세우고 각종 제사를 드렸으며 초막절을 준수하였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말미에는 아직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지 못한 당시의 상황을 지적하였다. 이제 이러한 내용에 이어지는 본절에서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한 준비 상황이 보도된다. 이러한 본절은 성전 재건 공사에 있어 필수적인 석수와 목수를 고용한 사실을 밝히는 본문으로 시작된다. ... 본문에서 말하는 ‘석수와 목수’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돌과 나무 등을 공급하고 다루는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중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였다(출1:11). 그리고 이를 통해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같은 뛰어난 건축술을 가진 사람들이 배출되었다(출36:1). 이와 마찬가지로 포로기 후대 당시에도 바벨론에서 체류하는 동안 나라 안의 크고 작은 건축 일에 동원되었던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건축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과거 그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위해서 일했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의 삶의 중심이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자신들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전 재건을 위한 석수와 목수의 고용이나 시돈과 두로 사람에 의한 목재의 수운은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위해 준비하던 때의 과정과 유사하다(대상22:2, 4, 15 ; 대하2:8 이하). 이처럼 본서 기자는 포로 귀환 공동체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솔로몬이 성전을 처음 지을 때의 과정과 비슷하게 서술하였다. 본서의 일자 독자들은 이러한 본문을 읽으며 이스라엘 포로 귀환 공동체가 과거 솔로몬 성전이 건축될 때의 영광을 회복하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의 영광된 상태로 온전히 회복시키실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 건축 재료를 준비하고 다루는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지만 목재를 운반하는 일은 이방인인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들이 맡았다. 그들은 물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일을 하였지만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을 위하여 백향목과 노동력을 제공한 것 같지는 않다.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란 표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바사 왕의 통치를 받는 자들로서 바사 왕의 조서에 따라 진행되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포로 귀환민들은 레바논의 특산품인 백향목을 어려움 없이 확보할 수 있었다. 백향목은 레바논 산지에서 벌목되어 두로까지 육로로 운반되고 여기서 해상을 통하여 욥바까지 운반되었을 것이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 157-158)
자신과의 대화
1. -에스라 1-6장은 1차 포로 귀환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특히 3장은 그들이 귀환하여 가장 먼저 성전터에 번제단을 만들고 7월부터 번제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을 중건하기 위해 준비하고 기초를 세우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B.C. 537년 제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들의 본성으로 돌아가 거하였다가 종교력으로 7월이 이르자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이는 7월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종교력을 보면 7월에는 1일에 지키는 나팔절, 10일에 지키는 대속죄일, 15일부터 한 주간 동안 지키는 초막절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는 제 1 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B. C. 536년 2월에 개시되었다(8, 9절). 그리고 마침내 성전 지대가 놓였으며, 이스라엘 자손들은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념식을 거행하였다(10-13절).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 지대가 놓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념식을 거행한 것은 그것이 선민의 정체성이 다시 회복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6장은 B.C. 537년 이루어진 바벨론 포로 제 1 차 귀환에서부터 B. C. 516년에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그 가운데 앞선 1, 2장은 고레스의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 허가 칙령에 따라 이루어진 제 1차 포로 귀환 및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 예물 헌납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제 3-6장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내용인데, 그 초두인 3:1-7은 여호와의 전 재건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이 재단을 축조하고 초막절을 준수한 사실을 보도한다.
2. -'각자의 성읍'은 각 지파의 땅에 있는 성읍을 말한다. 마리아와 요셉의 조상은 유다 지파인데 왜 나사렛에 정착했는지는 아직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일곱째 달'에 왜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 것은 7월 1일의 나팔절과 10일의 대속죄일, 17일부터 시작되는 초막절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본문의 7월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라는 사명을 띠고 바벨론 포로에서 이제 막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이 귀환 뒤에 처음 맞이하는 7월이었으므로 그들에겐 매우 뜻깊은 달이었으며, 민간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으므로 새해 첫 시간부터 예루살렘에 모여 자신들의 신앙을 다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 본서 저자가 칠월이 되었다는 사실을 본장 서두에 앞세운 것은 이제 막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성전 재건에 앞서 초막절 준수를 통해 영적으로 자신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즉 건물로서의 성전 재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했던 것이다. 본서 기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단순히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같은 때에 동시에 모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모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제사하려는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3. -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는 대제사장이다. "그는 립나에서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살해당한 제사장 스라야의 손자이고(왕하25:18) 여호사닥의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 대에 바벨론으로 끌려왔고(대상6:14-15) 그 이후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자랐다(2:2 주해 참고).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성전 건축의 주역을 담당했던 유다 지파의 지도자이다. "스룹바벨은 유다 왕의 직계 혈통으로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가 된 여호야긴 왕의 장자 스알디엘의 아들이다(3:2; 학1:1, 12). 아마도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이를 감안하여 그를 이스라엘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웠을 것이다(2:2 주해 참고). 본문은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수행한 일이 무엇인지를 명시적으로 밝힌다. 예루살렘 성전 터에 모인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단을 쌓은 것이었다. 3절은 무리들이 주변 이방 족속들로 인하여 두려워하면서도 제단을 원래 자리에 세우고 조석으로 여호와께 상번제를 드렸다는 내용이다.
4.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 했던 것은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의 숫자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체계를 갖추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터'는 성전의 제단이 놓여 있었던 터로 생각된다.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비록 그 땅 백성들로부터 나온 두려움이 그들 위에 있다고 할지라도’가 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시 인접 국가들에 대해 갖은 두려움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아마 이는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에 비하여 이들의 수효가 월등히 많았으며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큰 배타심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의 땅에 돌아온 지 얼마 시간도 흐르지 않아 정착을 위한 기반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이 군사적 공격을 해온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멸절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이방 세력에 대하여 큰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단을 쌓았을 뿐 아니라 상번제를 빠뜨리지 않았던 것은 여호와를 향한 그들의 신앙이 깊었음을 반영한다.
5. -초막절에 대한 '기록된 규례'는 레23:42, 43, 민29:12-38에 기록되어 있다.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40년 간 연단시키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신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포로 귀환민들도 과거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바벨론에서 연단시키셨을 뿐 아니라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로 초막절을 지켰을 것이다. 초막절 기간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한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켰다. 7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나뭇가지로 지은 장막에 들어가 지내야 했고(레23:42, 43)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여 축제를 벌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소 고난의 장막을 체험한 뒤에 기쁨의 축제를 행함으로써 애굽과 광야에서 구원받아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된 일이 얼마나 크고도 놀라운 은혜인지를 실제로 체험하였던 것이다. 초막절은 장막에서 지낸다고 하여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들이는 기간이라고 하여 수장절이라고 하였다.
6.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은 레1:3에 나오는대로 자원제물을 말한다. 세 종류의 제사는 의무적인 제사이지만 이 예물을 자원제물을 말한다. 본절에는 특별히 세 가지 제사가 제시된다. 첫째, 항상 드리는 번제이다. 이는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를 가리킨다. 이는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번제는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제시였다(출29:38, 39). 둘째, ‘초하루에 드리는 번제’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 표현 대신 ‘그 달의 초하룻날’이란 뜻의 ‘월삭’이란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민10:10; 시81:3). 셋째, 각 절기에 따라 드리는 제사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3대 절기라고 할 수 있는 니산윌(3, 4윌)의 유월절(출12:3-20; 레23:5-8; 신16:1-8), 시완윌 (5, 6윌)의 칠칠절(출23:16; 레23:16; 민28:26), 그리고 티스리월 (9, 10월)의 초막절(레23:34; 민29:12-38) 뿐만 아니라 7월 1일의 나팔절이나 7월 10일의 대속죄일(출30:10) 등에는 각 절기의 절차에 따라 수많은 제사가 드려지고 수많은 희생물들이 바쳐졌다. 본문은 ‘여호와께 자원제로 드리는 모든 제물을’로 이해할 수 있다. 절기에 따른 제물이나 월삭이나 상번제로 드리는 제물은 모세의 율법이 정한 것이므로 의무적인 사항이었지만, 자원 제물은 제물을 드리기 원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선택 사항이었다.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는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 의해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이를 위해 자신들의 가진 것들을 자원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렸다(8:28).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속한 개인이(고전3:16)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자원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되 반드시 온전한 예물을 드려야 한다.
7.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는 포로에서 돌아온 그해 7월을 말한다. 1차 포로 귀환은 B.C. 597년에 이루어졌고 각각 자기 성읍으로 갔다가 다음 해 7월에 모인 것이다.
8.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은 스1:3-4, 6:3-12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말한다